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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입자는 스핀에 따라 보존과 페르미온이 구분된다

별빛3 2010. 6. 29. 16:27

 

양자역학이 지배하는 미시세계에서는 거시세계에서 상상하기 힘든 현상들이 많이 생긴다. 양자역학에 의하면 물질의 기본단위를 이루는 소립자들은 스핀(spin)이라는 물리량을 가진다. 스핀은 각운동량의 일종이다. 스핀은 스스로 돈다는 의미가 있지만 소립자들은 크기나 부피가 없는 점입자(point particle)로 간주되기 때문에 실제 소립자가 회전하거나 하는 일은 없다. 스핀은 질량이나 전기 전하량처럼 소립자가 내재적으로 고유하게 간직하고 있는 회전효과이다. 양자역학에서는 물리량들이 덩어리져서 불연속적으로 존재한다. 각운동량도 예외가 아니어서 소립자들이 가질 수 있는 스핀값은 0, 1, 2, 같은 정수값이거나 1/2, 3/2, 등과 같은 반(半)정수값 두 가지 뿐이다. 전자의 스핀값을 가지는 소립자를 보존(boson)이라 하고 후자의 스핀값을 가지는 소립자를 페르미온(fermion)이라고 한다.

 

 


보존은 여러 개의 입자가 같은 물리적 상태에 있을 수 있다. (보즈-아인슈타인 응축) 반면에 페르미온은 같은 상태에 둘 이상의 입자가 있을 수 없다. (배타원리) 여러 개의 페르미온이 있으면 각 페르미온은 각기 서로 다른 상태를 차곡차곡 채워 나간다. 이 때문에 페르미온은 물질을 구성하는 역할을 한다.


전자나 양성자는 모두 페르미온으로서 이들의 스핀값은 1/2이다. 반면 힘을 매개하는 입자들은 모두 보존으로서 빛(광자)이 대표적인 예다. ‘신의 입자’로 불리며 소립자들에게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 입자는 스핀이 0인 보존이다. 자연계의 모든 소립자는 보존 아니면 페르미온이다. 이는 마치 자연에 남자와 여자 두 종류의 성이 있는 것과도 같다. 남녀의 성을 구분하는 것은 성염색체로서 남자는 XY, 여자는 XX의 성염색체를 가진다. 굳이 말하자면 남자는 혼자서 독립하기를 좋아하니까 페르미온, 여자는 상대적으로 서로 붙어 다니길 좋아하니까 보존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초대칭성(supersymmetry)이란 보존과 페르미온 사이의 대칭성이다. 만약 자연계에 초대칭성이 있다면 모든 보존은 각각 자신의 초짝(super partner)으로서 페르미온을 하나씩 동반한다. 마찬가지로 모든 페르미온도 각각의 초짝으로서 보존을 하나씩 가진다. 말하자면, 이 세상 모든 남자와 여자가 각기 자신의 짝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초대칭성은 1971년 구 소련의 골판드(Y. Golfand)와 리크트만(E. P. Likhtman)이 수학적으로 처음 도입하였다. 같은 해에 라몽(P. Ramond)과 느뵈(Neveu) 및 슈바르츠(Schwarz)도 독립적으로 초대칭성을 도입하였다. 라몽과 느뵈와 슈바르츠는 당시 끈이론(string theory)을 연구하다가 초대칭성을 발견하였다. 초대칭성이 있는 끈이론을 초끈(superstring)이론이라고 한다.


 

남자만 있는 군대는 삭막하다. 여자만 있는 여대도 썰렁하긴 마찬가지다.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어야 하고, 여자가 있으면 남자가 있어야 하는 게 자연의 정한 이치다. 남녀가 골고루 섞여 있어야 생기가 돌고 활력이 넘친다. 남녀가 제각각 자기 짝을 찾아 조화롭게 살고 있으면 우리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소립자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초대칭성은 미학적으로 무척 아름답다. 보존이 있으면 페르미온이 있어야 하고, 페르미온이 있으면 보존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어떤 입자의 존재에 대한 필연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예컨대 표준모형에서는 힉스 보존처럼 스핀이 0인 입자가 꼭 있어야만 하는 이유를 이론 내적으로 찾기가 어렵다. 왜 스핀이 0인 입자가 자연에 있어야만 할까? 초대칭성은 이 문제를 아주 쉽게 해결한다. 스핀이 1/2인 페르미온이 있으면 그 초대칭짝은 스핀이 0인 입자이기 때문이다.

 

 

초대칭성은 표준모형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난제들도 해결할 수 있다. 초대칭성이 각광을 받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표준모형의 힉스 입자 질량에 대한 미세조정의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했기 때문이다. 표준모형의 미세조정의 문제는 지난 글에서도 설명한 적이 있다. 요지만 설명 하면 이렇다. 힉스 입자는 애초에 천문학적인 질량을 가지고 있는데, 입자가 순간적으로 생겨나고 사라지는 일들이 반복될 때 발생하는 효과가 그 질량을 상쇄하여 양성자의 수백 배의 질량으로 관측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상쇄되어 나타나는 효과의 정밀도는 1/1032이다. 이 미세조정의 문제는 많은 과학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에 초대칭성이 있으면 이렇게 어색한 미세조정이 전혀 필요 없다. 표준 모형에서 힉스입자의 원래 질량이 천문학적으로 커야 되는 이유는 주로 톱쿼크와 힉스와의 반응 때문이다. 그런데, 초대칭성이 있다면 톱쿼크에도 그 초짝인 스톱(stop, scalar top의 약자)입자라는 것이 있게 된다. 그 스톱입자가 존재하면 스톱입자와 힉스와의 반응이 톱쿼크와 힉스입자와의 반응에 의한 영향을 상쇄시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힉스 입자의 질량이 원래 천문학적으로 큰 데, 입자들과의 반응을 통해 절묘하게 조정된다는 믿기 힘든 설명은 필요 없게 되는 것이다.

 

초대칭성은 암흑물질(dark matter) 문제에도 제격이다. 암흑물질은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정체는 오리무중이다. 표준모형의 패러다임에서는 암흑물질의 후보가 전혀 없다. 그러나 표준모형에 대해 초대칭적인 입자, 즉 초입자(super particle)가 있다면 그 가운데 가장 가벼운 입자가 암흑물질일 가능성이 높다. 과학자들은 초입자들 중에서 초중성소자(neutralino)를 암흑물질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실험적으로 우리는 아직까지 초입자를 본 적이 없다. 자연의 초대칭성이 정확하다면 서로 초짝을 이루는 보존과 페르미온의 모든 물리적인 성질(스핀만 제외하고)이 똑같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예컨대 전자의 초짝은 전자와 질량이 같기 때문에 여태 발견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신은 우주를 창조할 때 초대칭성을 허락하지 않은 것일까? 과학자들은 자연에 초대칭성이 있더라도 그것이 적절하게 깨져 있으면 초입자들의 질량이 충분히 커서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소립자의 질량이 크면 클수록 발견하기 어렵다. 질량이 큰 입자는 생성되는데 큰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힉스 보존의 질량을 자연스럽게 안정시키려면 초입자들의 질량은 대략 양성자 질량의 약 1천 배 정도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정도면 유럽의 대형강입자충돌기(LHC)가 충분히 넘어설 수 있는 에너지다. 과학자들의 예상이 맞다면 1년에 대략 수만 개의 초입자가 LHC에서 만들어질 것이다. 짚신도 짝이 있다는데, 여태 숨겨져 있던 자연의 또 다른 반쪽을 인류가 마침내 들춰볼 수 있을지 사뭇 궁금해진다.